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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클릭이사람] (242) 매일아침 희망메시지를 전달하는 ‘새미래뉴스’ 최상용 등록일 2019.09.08 12:29
글쓴이 꿈지기 조회/추천 250/2

 

[클릭이사람] (242) 매일아침 희망메시지를 전달하는 ‘새미래뉴스’ 최상용

김명수기자 | 입력 : 2002/12/02


[클릭이사람] (242) 매일아침 희망메시지를 전달하는 ‘새미래뉴스’ 최상용

매일아침 네티즌들에게 희망메시지를 전달하는 인터넷 사이트 ‘새미래뉴스.’ 아직은 오픈 초기인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다름아닌 전직 해병대 장교다. 사람냄새가 풀풀 나는 이 사이트(www.semirenews.com

 

새미래뉴스에는 각박한 세상을 훈훈하고 인정 넘치는 세상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그의 꿈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겉으로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 속으로는 한없이 의지가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누구인가.

불가사리 훈련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으로 1999년 제2건국추진위원회 산업교육부문 신지식인에 선발된 사람. 불가사리 훈련은 또 무엇인가.

불가사리 훈련은 단순한 극기훈련이 아니라 자기 및 조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주제로 하는 훈련이라고 설명한다.   

새파랗게 젊은 시절 해병대 장교에 지원하여 22년을 군 특수보직에서 생활한 그는 피나는 자기개발 노력 결과 군 위탁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고대 교육대학원에서 산업심리교육을 전공하였다. 배움의 열정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그 어렵다는 미 심리학회 NTL (National Training Laboratory)과정까지 수료한다. 

군 전역 후 산업교육 기관인 한국산업교육본부에서 조직관리와 프로그램 개발 및 강의를 해 오다가 삶의 향기를 창출하는 새미래뉴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를 보면 오직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요즘 인터넷은 이미 우리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매체로 깊숙이 자리매김을 했다. 그러나 현대인의 물질만능주의, 공동체의식 결여, 이기주의 등 사회 현상에서 “신뢰, 나눔, 변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신뢰와 나눔의 물결을 국민저변으로 확대하기 위하여 그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을 중심으로 새미래뉴스를 구축하여 지난 9월15일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새미래뉴스는 매일아침 요일별 주제로 ‘지혜의 샘터’라는 동영상 컨텐츠를 제작하여 지혜와 지식, 실생활 추천정보를 네티즌 회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해병대 소령으로 전역한 행동변화 전문가. 22년을 해병대 장교로 근무한 사람이라면 군인냄새가 몸에 밸 법하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원만한 성격으로 업무수행은 치밀한 반면 준비심이 강하고, 대인관계는 의리를 중시하여 개인보다는 조직이 우선이라는 신념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저는 건전한 비전과 철학을 실현하는 조직에서 상호협력과 지혜를 기반으로 잠재능력을 발휘하여 꿈을 실천 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심성을 갖고 평소 땀 흘리고 준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군에서 전역후 갯벌의 생명력과 불가사리의 도전의식으로 IMF를 극복하자는 생각으로 자기변화 프로그램인 ‘불가사리 정신교육’을 98년에 개발하여  TV, 신문, 라디오 등 국내외 매스컴에 20여회나 소개되어 화제를 모은바 있다. 

해병대에서 경험한 특수교육과 심리학(고대 대학원 산업심리학과, 미NTL과정 수료)의 감수성 훈련, 창의력 개발기법 등을 교육대상과 조직의 목표에 부합되게 적용한 불가사리 훈련은 단순한 극기훈련 차원에서 벗어나 개인과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 오늘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국내 최초로 섬과 갯벌이라는 자연지형을 활용한 자연 친화적 프로그램으로 불가사리 훈련은 기업체뿐만 아니라 국민정신계도 교육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청소년,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있으며 자발적 참여 분위기를 조성함은 물론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조직의 일체감을 높일 수 있다.

그는 또한 노인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꾸준히 자료 수집을 해왔다. 노인문제 연구를 위해 고대 교육대학원에서 산업심리학을 공부하고 군에서 전역후 미 NTL 과정을 이수하면서 노인 교육에 대한 연구를 하여 우리문화에 맞는 노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가족으로는 84년 결혼한 아내와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아내는 그가 해군2사관학교 교관으로 있을 때 같은 교관으로 근무하던 사촌오빠의 중매로 만났다.  

“군 생활에서의 잦은 이사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가정을 꾸려왔고 97년 전역 이후 제대로 월급을 갖다 주지 못하여 아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생사의 고비를 3번이나 넘은 불사조 사나이. 그런 역경이 그를 더욱 겸손하고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처음 겪은 죽음의 고비는 해병중위로 있던 1978년 3월12일. 초봄의 날씨이지만 포항의 바닷바람은 차가웠다. 그가 속한 99부대는 팀스피리트 98 훈련의 선봉에 서서 가상적진인 원산항만에 고공 침투를 감행하여 아군이 상륙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는 해병중위로 부중대장의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 새벽4시에 기상하여 훈련기에 탑승할 준비를 서둘렀다. 새벽 05시30분 그의 부대원은 6대의 미군 수송기에 분산 탑승했다. 굉음과 함께 그가 탄 1번기는 푸른 포항의 활주로를 가로질러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이어 2,3,4,5,6번기가 꼬리를 물고 그 뒤를 따랐다.

한참을 비행한 것 같아 뛰어내려야 할 시간이 된 듯싶었는데 다음 지시가 떨어지지 않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통제 간부에게 물어보니 "오늘 기상이 나빠 낙하하기가 어려워 미군 통제장교와 의견을 수렴중"이라는 것이었다. 

공수낙하 훈련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상조건. 원래 풍속이 13노트 이상이면 훈련이 금지되어야 하는데 그날은 21노트의 강풍이었다. 인명을 중시하는 미군 측에서는 낙하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한국군 측에서는 낙하를 강행하자고 의견이 엇갈려 시간이 지연된 듯싶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지상의 관제탑에는 이번훈련을 관람하기위해 국방장관, 한미연합사령관, 육해공 참모총장들이 모였다. 

그가 이끄는 부대원은 낙하지점을 찾지 못한 채 장장 5시간 40분을 비행기에 맡기고 녹초가 되어 이미 뱃속의 쓴물까지 토해낸 상태로 몇 번의 낙하준비를 반복하다가 1번기 맨우측 선두에 선 그가 선착으로 허공을 향해 뛰어내렸다.

평소 훈련대로 자세를 잡고 펼쳐진 낙하산을 조종하려고 애썼으나 워낙 거센 강풍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필사의 몸부림을 쳐봤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친 그는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이 들면서 정든 사람들의 얼굴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는 순간 그의 몸은 계획된 낙하지점을 벗어나 산을 3~4개 넘어 어느 계곡에 곤두박질치면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가느다란 호흡을 내쉬면서 눈을 떠보니 어느 초가집 아랫목에 누워있었다. 사고 이틀만에 의식이 돌아온 것이다. 손발은 감각이 없고, 입속에는 모래와 흙이 가득 차 있고, 온몸에 멍이 들고, 얼굴은 온통 짓눌려져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무 하러 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의식을 잃은 그를 발견하여 지게에 지고 자기 집에 데려와 간호를 하였던 것이다. 동기생들은 그가 실종되어 죽은 것으로 알고 조의금을 걷고 장례준비를 하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두 번째 고비는 81년 10월1일. 해병대 대위시절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에서 갑종 위탁생으로 선발되어 학생의 신분으로 공부를 하던 어느 날 친한 친구의 주선으로 남자3명과 여학생 5명이 휴일을 맞아 설악산 등산을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었다.

해병대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그가 선두가 되어 이끌고 나가다가 낭떠러지를 통과해야하는 협곡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날은 저물고, 그렇다고 온 길을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먼저 협곡을 통과한 후 허리띠를 풀어 연결하여 밧줄을 만들고 한사람씩 통과하도록 했다. 왼손으로 건너오는 사람의 손을 잡고 마지막 힘을 주는 순간 오른손으로 잡은 소나무가지가 부러져 그만 계곡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보는 사람들이 "악~~~" 소리를 내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순간 그는 나무와 돌부리를 헤치면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떨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잡으려고 몸부림치면서 한참을 굴러가다보니 옷자락이 나뭇가지에 걸려 몇 시간이 지난 후 지나가는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올라올 수 있었다.

세 번째 죽음의 고비는 1983년 9월23일. 휴가를 내어 고향(전북 대야)을 찾았다.
 
길을 가다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승용차 한대가 돌진하면서 그를 덮쳤다.
 
순간 그와 친구는 허공에 솟구치면서 7M나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혀 의식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병원. 그런데도 그는 특별하게 다친 곳이 없었다.

3번의 생사를 넘는 고비는 그에게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알려준 소중한 나침판이었다.

그는 자기 개발에 관한한 어느 누구보다도 철저하고 부지런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일간지 잡지 인터넷을 망라하여 자신의 관심분야 자료를 모으고 자기개발 활동을 해왔다.

군 재직시에도 전문 연구지에 수차례 논문을 기고하여 표창을 받은바 있다. 어디 그뿐인가. 

듣기에도 생소한 성격검사 전문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개인, 조직 프로그램 개발 및 전문강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감수성 훈련 지도강사 자격증’도 있다.

그런가 하면 노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인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보건복지부에 건의한바 있으며 또한 고향에 홀로된 부모님을 보살피고 실버세대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다원적 복지프로그램인 실버프로젝트계획을 수립했다. 

99년 그는 자기변화 프로그램인 불가사리 정신교육으로 제2건국추진위원회 산업교육부문 신지식인으로 선발된다.
 
그리고 지난 9월15일 국민정서순화를 위한 새미래뉴스를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560815-xxxxxxx. 단 하루도 어긋나지 않고 8월15일 광복절이 생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애국심이 남다르다.  

“세상에 태어나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인가?  어린시절 시골 중학교에서 매주 월요일에 열리는 조회시간에 애국가를 부르면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면서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죠.”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포기하고 ‘해군제2사관학교’에 입교하여 혹독한 생도생활과 해병대 장교로 근무하면서 항상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한걸음씩 노력했고 자료를 수집하고 관련된 전문가를 만나고 부단히 뛰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운영하는 새미래뉴스에 남은 인생을 걸기로 했다. 그런만큼 새미래뉴스에 거는 기대가 크다. 

“제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나라의 기둥인 청소년을 바르게 교육하는 것이며, 우리의 전통인 효를 근간으로 하는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실버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는 것입니다. 미흡하나마 이제 작은 실천을 할 수 있는 모태가 바로 새미래뉴스이며, 뜻있는 분들이 동참하여 그 열매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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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naver.com>

2002년 12월2일 01시02분 


* 출 처 : http://www.inmulnews.com/sub_read.html?uid=871§ion=sc1§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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