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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꿈과 희망찾기 > 꿈과희망뉴스

제목 [] "부모 간호 23년…내 삶이 없어도 후회하지 않아요" 등록일 2016.05.20 21:25
글쓴이 최상용 조회/추천 861/16

 

"부모 간호 23년…내 삶이 없어도 후회하지 않아요"

울산의 대표 효행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는 김숙현(59·오른쪽)씨와 김씨의 어머니 박옥순(91)씨.
어버이날 대통령 표창받는 59세 노처녀 김숙현씨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병든 부모를 간호하느라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포기한 딸이 있을까.

울산시 울주군에 사는 김숙현(59)씨는 환갑이 다 된 나이지만 노처녀다.

영어회화에 능통한 '신여성'이었지만 23년간 중병에 걸린 부모를 돌보느라 결혼할 여유도 없었다.

부모 곁을 종일 지켜야 해 번듯한 직업도 갖지 못하고 펜션이나 모텔 청소일을 파트타임으로 하며 역경을 견디고 있다.

그런데 표정이 환하다.

김씨는 "편찮은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딸로서 당연하다"며 "일과 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 번도 후회하거나 원망한 적은 없었다"고 웃었다.

김씨는 전립선암과 폐결핵을 앓다 올해 2월 돌아가신 아버지(향년 92세)와 만성 신부전을 앓는 어머니(91)를 20년 넘게 모셨다.

젊은 시절 김씨는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그 당시에는 드물게 외국을 다니며 통역 일을 하는 당찬 여성이었다.

외국 출장을 가는 국내 기업가들과 동행하며 통역과 비서 일을 맡았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배낭여행을 하기도 하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일자리를 구해 몇 개월간 살기도 했다.

김씨의 역경이 시작된 것은 1994년. 신부전증을 앓던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하여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자신이 누리던 화려한 삶을 미련없이 포기했다.

김씨는 "당시 오빠와 남동생은 사정이 되지 않아 부모님을 모실 수 없었다"며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편히 모시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기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게 하라"는 의사의 말에 모아둔 돈을 털어 경기도 안성의 한 호숫가 옆에 부모님과 같이 살 집을 지었다.

병간호로 통역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번역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김씨의 어머니는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한 후 병세가 놀랍도록 호전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겼다.

전립선암이 발병해 거동하지 못하고 몸져눕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김씨 본인마저 친척 보증을 섰다가 돈을 떼여 경제적으로 더욱 피폐해졌다.

김씨는 결국 10년간 살던 안성 집마저 팔고 부모님을 모시고 지인이 병원을 운영하는 충북 진천으로 향했다.

진천의 병원에서 아버지는 계속 치료를 받았고, 병원비는 고스란히 김씨의 부담으로 남았다.

돈이 있어야 했다.

김씨는 진천의 한 플라스틱 용기 제조공장에 입사해 생산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돈을 벌려면 눈높이를 낮추고 과거에 잘나갔던 내 모습을 잊어야 했다"며 "정신적으로 강한 편이어서 금세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견딜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혼자 번 돈으로 부모의 치료비와 약값, 생활비를 감당하기엔 벅찼다.

진천에서 8년을 살던 김씨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울주군 서생면에 사는 조카의 집에 더부살이하게 된다.

영어회화가 유창해 처우가 비교적 괜찮은 몇몇 기업에 취업할 기회가 있었지만, 몸이 편찮은 부모 곁을 한시라도 비울 수가 없어 그마저도 포기했다.

펜션과 모텔의 청소 일이 날 때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 부모의 병원비와 간호비에 보탰다.

김씨가 20여 년을 극진히 보살폈지만, 아버지는 올해 2월 폐결핵이 악화돼 결국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아버지가 편안하게 임종을 맞으신 것이 나에겐 가장 큰 위로"라며 "그렇지만 올해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지 못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젊었을 때 콧대가 높아서 아무 남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병든 부모님 곁을 지키면서부터는 시간도 안 났고 형편도 안됐다. 결혼은 사치였다"고 말했다.

김씨의 바람은 홀로 남은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최근 외출을 했다 넘어져 갈비뼈와 턱을 다쳐 너무 속상하다"며 "어머니가 아프지 않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라고 밝게 웃었다.

김씨는 6일 울산 종하체육관에서 열리는 '제44회 어버이날 기념행사'에서 울산의 대표 효행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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