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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위험한 충성’ 등록일 2018.01.09 10:32
글쓴이 최상용 조회/추천 589/3

 

‘위험한 충성’
박 원 재(강원대 삼척캠퍼스 강사)

   당연한 말이지만, 1년 전 귀향하여 시내에서 떨어진 외곽의 농촌 지역에 주거를 정하면서 생활이 바뀐 것이 몇 가지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매일 실감하는 변화를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개를 기르게 된 일이다. 특히 개밥을 챙겨줄 때마다 이를 절감한다. 외출했다가도 밥줄 시간이 되면 다시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집에 돌아와야 하고, 며칠 출타라도 할라치면 매번 이웃의 지인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개 키우는 것이 오랫동안 꿈꾸어 온 일이긴 하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활의 변화를 실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히, 게을러지지 않으려면 짐승을 기르라던 옛 어른들의 말씀을 덜지도 보태지도 않고 목하 온몸으로 체험하는 중인 셈이다.

충견 탄생의 비밀

   무술년(戊戌年), 개의 해가 밝았다. 동양의 간지(干支)는 음력 문화의 산물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아직은 닭의 해인 정유년(丁酉年)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간지는 시간을 헤아리는 단위로서의 기능을 거의 정지당한 지 오래므로 음력을 고집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올해의 띠 동물인 개는 야생을 떠나 가장 먼저 사람의 품을 파고든 동물이라는 점에서 친밀감이 단연 앞서고, 사람에 대한 충성심 또한 다른 가축을 압도한다. ‘충견(忠犬)’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자신의 특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충성 충(忠)’ 자를 허락받은 거의 유일한 동물이 개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시골에 거주하면서 오랫동안 꿈꾸던 개 기르는 일을 실행에 옮긴 것도 따지고 보면 마음 한 구석에 그런 충견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기가 그러하다 보니 개는 모름지기 도베르만이나 시베리안 허스키 또는 진돗개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꿈은 지금 기르는 녀석들을 만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우연한 계기에 크게 자라는 좋은 품종의 개라는 말을 듣고 남매 사이인 녀석들을 입양했고 자칭 ‘개 고수’라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일본의 진돗개쯤 되는 아키다 종 같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터라 잔뜩 기대했는데, 1년이 다 되도록 녀석들의 키는 중키를 넘지 않고 어리광만큼이나 겁도 많은 걸로 보아 아키다는 물 건너간 형국이다. 그리하여 이러저러한 정보를 종합한 끝에 슈나우저 잡종 어름으로 품종을 최종 판정하고, 꿈은 조각났지만 이것도 인연이라 여겨 반려의 정을 쌓아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녀석들이 흔히 말하는 ‘X견’인 건 아니다. ‘앉아!’, ‘먹어!’와 같은 기초적인 명령은 충실히 알아들음은 물론, 먹이를 입에 넣었다가도 ‘기다려!’라는 말에 냉큼 뱉을 정도이니 기본치레는 하는 셈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익히 공지된 비밀이 있다. 명령 수행에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먹이이다. 특히 건빵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주인의 말을 들어줄 때마다 죽고 못 사는 건빵이 주어진다는 것을 학습한 뒤로 제한된 영역에서나마 녀석들은 ‘충견’으로 변신하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조건반사적인 학습의 결과로 탄생한 충견이다.

충성의 딜레마와 눈먼 충성

   세상의 모든 충성이 이렇듯 자신이 얻게 되는 이익에 대해 주판을 튕긴 뒤에 발휘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떠한 계산도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충성도 있다. 그러나 모든 충성을 관통하는 공통점 또한 있다. 어떤 형태의 것이든 충성은 그 자체로 목적인 덕목은 아니라는 점이다. 동양에서 ‘충’이 비교적 중요한 개념의 하나로 등장하기 시작하는 『논어』의 용례로 살핀다면, 충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궁극의 덕목인 ‘인(仁)’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방법론적 품성 가운데 하나이다. ‘충’에 대한 역대의 주석도 이를 뒷받침한다. 주희는 ‘자신을 다하는 것이 충’[盡己之謂忠]이라 했고, 다산은 좀 더 부연하여 ‘속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충’[中心事人謂之忠]이라고 했다. 정리하자면 무슨 일을 할 때,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심으로 헌신하는 품성이 충인 것이다.

   여기서 ‘충’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모종의 덕목을 구현하는 데 요청되는 방법론적 품성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목적의 합리성보다 수단의 합리성에만 올인하는 도구적 이성의 경우처럼, 자신이 섬기는 대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헌신하는 눈먼 충성으로 변질된 소지를 안고 있다. 그리고 헌신을 받는 자 또한 그런 맹목성을 ‘충’의 알파요 오메가로 인식할 때 그 충성은 길을 잃고 ‘위험한 충성’으로 전락한다. 한때 회자되었던 ‘배신의 정치’라는 말이 가능할 수 있었던 문맥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는 말도 그 어간에 이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나온 발언으로 기억한다.

   이른바 ‘국정농단’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악’을 의식하면서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할 때 그들은 오히려 확신범에 가깝다. 국가 정보기관이 불법적인 행위들이 들춰지는 상황에 대해 해당 기관의 직원들은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최고의 전사들이라고 추켜세우면서 그들이 조사받는 참담한 현실에 가슴이 찢어진다며, 본말이 전도된 소회를 밝히던 전직 기관장의 의연하기까지 한 모습에서 그것을 느낀다. 짐짓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독배라도 내리면 마시고 싶은 심정이라면서도 한편으로 법정에서 다른 말을 하는 옛 부하들에 대해서 한마음 한뜻으로 국가에 열심히 충성한다는 일념으로 함께 일해 놓고 지금 와서 상사의 강제적인 지시였다고 하니 안타깝다고 한, 자칭 ‘망한 정권의 도승지’의 의식구조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그야말로 개가 들어도 웃을 말로 자신들 행위의 무오류를 강변하던 30년 전 경찰 고위간부의 당당함(영화 〈1987〉)과 그대로 오버랩되는 위험한 충성의 장면들이다.

자신에 충성하는 한 해가 되길

   에릭 펠턴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저서 『위험한 충성(Loyalty)』에서 잘 환기시키고 있듯이, 충성의 본질은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적합한 상황을 만나면 그저 느끼고 발동되는 감정적 반응에 더 가깝다. 바로 이 때문에 충성은 눈멀기 쉽다. 하지만 충성의 감정에 그런 그늘이 있다고 이것을 회피할 수는 없다. 가족에 대한, 친구에 대한, 사랑하는 이에 대한, 나아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감정이 딛고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충성이 눈이 멀어 길을 잃고 위험한 충성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앞서 인용한 선인들의 말 속에 있는 듯하다. ‘자기를 다한다’는 것은 곧 ‘마음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애오라지 감정에 충실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마음에 선천적으로 내장되어 있는 보편적인 도덕관념(moral sense), 동양식으로 말하면 양지(良知)와 양능(良能),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仁)이나 사단(四端)의 빛을 길잡이로 삼아 헌신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충성이 눈이 멀게 될 가능성이 없다. 내면에 그것을 인도하는 빛이 있는 까닭이다.

   “사랑한다면 상대를 위해 수고를 마달 수 있겠는가? 충성한다면 상대를 위해 깨우쳐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愛之, 能勿勞乎? 忠焉, 能勿誨乎? 『논어』 「헌문」)라고 한 공자의 말은 참된 충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금도 생각하게 만드는 경구이다. 모름지기 개의 해인 올해에는 우리 모두 이 구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으며 ‘사람’과 ‘조직’ 이전에 자기 내면의 빛에 충성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그것이 한갓 충견이 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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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원재

· 강원대(삼척캠퍼스) 강사
· 전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 중국철학

· 저서
〈유학은 어떻게 현실과 만났는가〉예문서원, 2001
〈철학, 죽음을 말하다〉 산해, 2004 (공저)
〈근현대 영남 유학자들의 현실인식과 대응양상〉
한국국학진흥원, 2009 (공저)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글항아리, 2013 (공저)

· 역서
〈중국철학사1〉간디서원, 2005

 

<실학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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