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윤윤수] <31> 휠라 코리아 성공 비결-4 한때 휠라 코리아 대리점을 차리면 큰 돈을 번다는 소문이 돌아 청탁이 쏟 아졌던 시절이 있다. 자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내게도 여기저기서 압력 이 들어왔다. 물론 단 한건도 청탁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대리점을 통한 위탁판매 방식으로 이뤄지는 브랜드 사업에서는 대리점 관 리가 사업의 성패를 가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대리점이 문을 닫으면 곧바로 본사도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대리점 관리에 남다른 신경을 썼다.
우선 대리점을 내주는데 아주 엄격한 기준을 세웠다. ‘대리점을 내고자 하는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상권에 20평 이상의 면적을 갖춰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원칙에 맞는지 여부는 어디까지나 본사에서 판단했다.
초창기에는 A급 상권에 대형 매장을 갖고 있는 대리점 점주들이 이 같은 원칙을 무시하고 오히려 휠라 본사에 제멋대로 요구사항을 늘어놓는 등 횡 포를 부렸다. 나는 이런 점주들과는 과감하게 거래를 중단했다.
일단 거래를 트고 나면 대리점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우리는 지 원을 아끼지 않았다. 일반적인 거래 관행보다 더 좋은 이익을 제시했고 생 산업체를 상대로 실시했던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했다.
대리점 관리의 핵심은 곧 매장 관리라고 할 수 있다. 깔끔하고 근사한 매 장에서 물건을 사고 싶은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심리 아닌가. 인 센티브 제도를 도입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매장의 청결도, 인테리어나 디스플레이 등이 본사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만 족시키는 대리점에 대해서는 이윤을 더 많이 줬고, 그렇지 않은 대리점에 대해서는 돈을 덜 줬다.
본사 영업 직원들은 물론, 상품 기획, 디자인, 인테리어 관련 직원들이 수 시로 대리점을 방문했다. 이들이 대리점을 갈 때마다 가져간 것은 체크 리 스트. 대리점별 성적이 한눈에 매겨졌고 점수에 따라 이윤율이 정해졌다.
처음에는 다소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던 대리점 점주들도 시간이 지나자 오 히려 환영했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본사의 요구사항을 잘 지키면 대리점 매출도 그만큼 올랐다.
또 아무리 입지조건이 좋은 곳이 있더라도 기존 대리점에 타격을 줄만한 위치라고 판단하면 절대로 대리점을 내주지 않았다. 비슷한 위치에 대리점 을 잇따라 내주는 몰지각한 브랜드도 부지기수였다.
전산화를 일찍 도입한 것도 대리점 관리에 큰 도움이 됐다. 어떤 대리점에 서 남아도는 물건이 다른 대리점에서 부족할 경우 곧바로 물량 이동이 가 능했고, 때문에 대리점이 재고처리에 애를 먹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 하자 내수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휠라 대리점으로 돈을 버는 사람 이 많아졌다. 입 소문이 자연스럽게 나자 여기저기서 각종 루트를 동원해 대리점을 내달라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나는 청탁이 들어올 때마다 딱 잘라 말했다. “우리가 정해놓은 원 칙에 맞는다면 누구에게도 대리점을 내주겠다. 하지만 원칙에 맞지 않으면 청와대나 국회의원, 심지어 휠라 본사 사장이 요구해도 결코 허용할 수 없 다.”
뒷거래 없는 깨끗한 회사를 기치로 내세우며 일부 영업 직원들을 내보내기 까지 하는 강경책을 썼던 내가 원칙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더구나 원칙 이라는 것이 한번 무너지면 더 이상 원칙이 아니지 않은가.
휠리 대리점 내기가 힘들어지자 나중에는 ‘휠라 대리점을 하려면 윤윤수 에게 수천만원은 갖다 줘야 한다’는 이상한 소문까지 돌았다. 사장이 뇌 물을 먹고 대리점을 내주고 싶어도 직원들이 허락하지 않는 휠리 코리아의 구조를 몰라서 나온 소리다.
이렇게 해서 휠라 코리아는 본사와 생산 협력업체, 대리점이 황금의 3각 관계를 형성했다. 생산업체에서 고품질의 물건을 내놓아 대리점이 장사가 잘 되고, 대리점이 물건을 많이 팔아 생산업체의 생산량이 늘어나는 식이 었다.
휠라 그룹의 엔리코 프레시 회장이 “휠라 코리아가 휠라 그룹을 먹여 살 린다”고 감탄할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했던 휠라 코리아의 신화는 바로 이 처럼 본사, 생산 협력업체, 대리점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굴러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일보 200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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