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경영은 글로벌 스탠다드 신뢰없이 경영혁신 없다
'신뢰없이 경영혁신 없다'
미국의 의료법인인 뱁티스트 헬스케어는 '최고경영자가 사내의 휴지를 줍는다'는 명문화된 규정을 갖고 있다.
페더럴 익스프레스는 추첨을 통해 선발된 직원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비행기의 애칭을 붙인다. 그런가 하면 휴렛팩커드는 직원들이 아이를 데리고 출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다.
관료주의의 타파와 종업원 존중. 글로벌 기업들은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두가지 경영전략으로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지난 몇년동안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 경영이 국내에도 물밀듯이 밀려들어 왔지만 이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기업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신뢰경영'의 부재에서 찾는다. 윗사람들이 아랫사람을 믿지 못하면 권한을 위임하는데 주저하고 경영진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가 없으면 구조조정이 성공하지 못한다.
"우리의 기업 문화와 추구하는 가치가 오늘의 GE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높은 실적을 내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다시 신뢰가 더욱 강화됐습니다. 당신은 최고입니다"
지난 2월말 미 제너럴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인 제프리 임멜트 회장이 전세계 사업장의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의 일부분이다.
이날 GE는 미 포천지(誌)에 의해 5년 연속으로 '가장 존경받는 미국 기업'에 선정됐다. GE의 높은 실적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물론 없지는 않다. 무자비한 인력 감축을 서슴지 않았으며 그것이 비용절감을 거쳐 높은 실적으로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똑같은 수준의 인력 감축을 하면서도 실적을 내지 못했던 기업들이 더 많기 때문에 GE가 올린 실적을 간단히 인력 감축 때문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GE에는 핵심가치라는 것이 있다. '관료주의의 타파'(hate bureaucracy)는 그 중의 하나. 전임 회장으로 동시대 가장 우수한 최고경영자로 각광받는 잭 웰치가 철저하게 주입시켰던 가치다.
현재 일본의 GE플라스틱 아시아본부 인터넷 마케팅매니저로 근무하는 한국계 조나 홍은 "개념적으로는 별달리 어려울게 없다. 그러나 관료주의 타파를 위해서는 의사결정 구조의 단순화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권한 위임과 인재의 육성이 선결돼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GE플라스틱에서도 수년동안 근무했던 그는 "GE는 핵심가치를 정립하고 이를 내부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20년 동안 노력했는데 한국 기업들은 단지 제도만을 이식해 놓고 변화를 기대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그의 지적대로라면 감나무 묘목을 심어놓고 다음날 감을 따겠다고 작대기를 휘두르는 격이다. 관료주의 타파에서 권한 위임으로까지 이어지는 GE의 경영혁신은 오랜 기간동안 누적돼 온 신뢰의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상하가 서로를 믿지 못하면 권한을 위임할 수 없고 의사결정이 민첩하게 이뤄질 수 없다. 신뢰할 수 없으면 규정을 앞세우게 되고 그것은 곧 관료주의로 연결된다.
GE가 실천했던 것은 바로 신뢰경영의 철학이었으며 GE의 사내 인재육성 프로그램에는 이같은 사고가 스며들어가 있다. 신뢰는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사람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주장하는 최고경영자(CEO)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내가 회사의 소중한 자산으로 대우받고 있다'고 자부하는 종업원은 결코 흔하지 않다.
미국의 포천이 해마다 연초에 발표하는 '일하기 훌륭한 포천 1백대 기업'은 바로 그 흔치 않은 기업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들 기업의 경영자는 종업원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종업원은 자신을 회사의 가장 귀한 자산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같은 얘기가 이들 기업엔 결코 감원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감원으로 회사를 나간 사람이나 남아서 일하는 사람이나 회사와의 기본적인 신뢰가 깨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천 1백대 기업 중에도 일부 감원을 단행한 곳이 있지만 80% 이상의 종업원들은 감원을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받아들이며 여전히 최고경영자나 회사를 신뢰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신뢰를 쌓고 일하기 훌륭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사내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다.
경기가 좋지 않았던 최근 2년 동안에도 연 매출증가율 30%를 달성했던 한국바스프의 류종열 회장. 한국의 대표적 최고경영자중 한사람으로 꼽히는 그는 경영자와 종업원의 벽을 허물기 위해 '오픈 도어(Open Door)' 정책을 펴고 있다.
종업원들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회장실 출입문을 늘 열어 놓는다는 얘기다. 주목해야 할 것은 포천 1백대 기업중 절반 이상이 이미 오래전부터 '오픈 도어' 정책을 명문화된 사내규정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행동과 정책들은 종업원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할 때 의미를 갖는 것이며 비로소 내부의 신뢰관계를 증대시키는 요인이 된다.
GE의 임멜트 회장이 이메일의 말미에 적은 '당신은 최고입니다(You're the best)'란 문구는 '최고의 대우와 최고의 실적을 주고받는 상호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 (http://ww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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