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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기개발] 마음을 다스리는 100명상 (완결) - 인드라 초한 등록일 2007.08.01 22:21
글쓴이 최상용 조회/추천 805/1
마음을 다스리는 100명상 (완결) - 인드라 초한

2장


지혜의 문
* 역경은 삶에 강력한 활력을 제공합니다. 빚을 진 덕분에 일이 잘 되어 사회에 유익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빚도 일종의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차이는
그것을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가 못하는가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뛰어난 분별력을 포함하며 양심이다.

지식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방법 혹은 체계를 띠어야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지식의 최고 단계인 과학도 '인류와 그 호나겨을 위하여'라는 식의 허풍을 떨지 않아도 가까운 문제로부터 유익하게 쓰려면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20세기는 물질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정신문명은 치명적으로 후퇴한 시기입니다.
과학의 발달은 인류에게 회기적인 편리성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이 행복을 가능케 한 큰 요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인류는 과학이 발달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고 어느새 과학 그 자체를 목적화하고 말았습니다.
과학이 신을 대산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과학은 과학 그 자체를 위하여 발달한다고 하는 이기주의의 극치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지금보다 백 배 더 발달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핵을 개발해 미사일을 쏘며 서로 싸울 것입니다.
아무리 치밀한 컴퓨터를 개발하더라도 핵발사단추를 컴퓨터 자신이 스스로의 의지로 누를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원숭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핵발사단추를 누르더라도 미사일은 발사돼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지식의 결과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실은 양심입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 지혜는 뛰어난 분별력을 포함합니다. 인간의 판단능력이 자기 식으로 흘러간다면 그것은 원숭이만도 못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과학이 발달한 만큼 정신문명의 발달도 촉진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는 이성이 의문시되는 시대, 이성이 위기에 처한 시대입니다.
정신문명이 건전하게 발달했더라면 과학도 지금처럼 저차원단계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젯거리는 늘 多面體,
이 방향에서 보면 크게 보이고
다른 방향에서 보면 작게 보입니다.
보는 방식에 따라서는 전혀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문젯거리는 다면체적인 성격을 띠며, '다른 방법이 없다'는 태도는 있을 수 없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일이 갑자기 장애를 만나면 필요 이상 곤란한 표정을 짓거나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문제에 대한 면역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황하지 말고 차분히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결방법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 문제가 본인에게는 매우 중대해서 생명을 빼앗길 정도의 충격을 받을지 모르나, 같은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신경쓸 필요도 없는 사소한 문제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를 어느 측면에서 보는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문젯거리는 늘 다면체의 성격을 띠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문제가 발생해도 놀라지 않습니다. 문제를 가장 손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보는 방식에 따라 문젯거리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충격을 받고 쓸데없이 당황하는 것보다 어디서부터 접근하면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할 것입니다.
문젯거리는 다면체적인 성격을 띱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보는 의견이 다를 수 있고 해결방식도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태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한테서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보통사람은 학력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
부자나 유명한 사람의 말만 듣습니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서도
배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한테서나 배울 수 있는 사람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한테서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배운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지난날의 경험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다 보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당연하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식인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 혹은 학력이 높은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그들의 의견을 자신의 생각보다 중요시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직관을 경시하고 남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죠.
이것은 겸손하다기보다는 비굴한 태도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이 없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동양식을 보입니다.
그러나 지식인이나 학력이 높은 사람들의 판단이 항상 옳았을까요. 오히려 전쟁이나 쓸데없는 마찰이 일어난 것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의 의견이 계기가 된 것이 아니었나요.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한테서나 배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식견 있는 사람들은 물론,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냈던 뉴턴과 같이 삼라만상까지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현대는 정보사회이므로 어리석어서는 정보수집도 못할 것이고 평범해서는 정보수집에만 신경을 쓰게 될 것입니다.
올바른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배웁시다.

사람은 논리에 근거해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관계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움직일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마음이 있어서 감동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감정의 미묘한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무엇에 감동 받고 삶의 의욕을 갖게 되며, 어떤 일에 분노해서 의욕을 상실하는 것일까?
또 어떤 말에 공감하고 반발하는 것일까?
인간감정의 미묘한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단지 지능이 높아서 만은 아니며, 마음이 있어서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다른 점입니다.
경주마가 騎手의 마음에 공감해서 열심히 달린다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에게 감명을 받아서 자기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려 노력합니다. '知'가 아니라 '情'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요.
어느 시대에나 이해관계에 밝은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사람은 이해를 초월하고 때로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고 단언해도 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척정신을 높이 사는 것은 감동 할 수 있는 마음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열심히 사는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성원을 보내고 반드시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 소리가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그 손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전혀 다른 생각 없이 어떤 일에 전념하면 주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며 도움의 손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은 하던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 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무언가 충고를 하고 싶어서 중얼거리는 사람이 주위에 반드시 있을 겁니다.

사물은 반드시 양면성을 띱니다.
일방적인 견해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신만이 아시기 때문이죠.

진실은 여러 표정을 짓고 있다.

인간은 소문 때문에 망설일 때가 많은 존재입니다. 치우친 정보만을 수집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견해나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물에는 반드시 양면성이 있습니다.
惡에도 善이, 善에도 惡이 함께 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간세계입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 속에 병원을 짓고 의료봉사와 전도활동에 전 생애를 바친 슈바이처 박사는 밀림의 성자로 칭송받았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처 박사는 문명사회로부터 설탕, 우유 등을 가져와 밀림에는 없던 백내장, 결핵 등의 질병을 만연시켰습니다.
선을 베풀었으나 나쁜 영향까지 동시에 초래한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의 평판이 어떨지라도 박사가 숨을 거두자 수천 명의 원주민들이 그의 묘지에 꽃을 바쳤다는 그 사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이지요.
사람의 견해라는 것은 이런 것이어서 어떤 사람에게는 선이 다른 사람에게는 약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한 모습이냐 하면 모두가 진실한 모습입니다.
진실은 여러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일방적인 견해로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판단을 내릴 때는 그것과 다른 판단도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하십시오.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신밖에 모릅니다.

꿈이란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꿈은 현실세계의 계시입니다.
꿈으로부터 배우는 자세가 있으면
인생을 두 배로 즐길 수 있습니다.

꿈은 현실세계의 계시이며 장래로부터의 메시지이다.

꿈 중에서도 장래에 관한 꿈을 豫知夢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자 '칼 융'이 이런 꿈을 자주 꾸었다고 하는데 그는 유럽대륙 전체가 피투성이가 되는 불길한 꿈을 여러 번 꾸고 우울증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고 고민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융은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친구의 사망과 같이 자기 주변에서 생길 일에 관해서도 여러 번 예지몽을 꾸었습니다.
융이 '꿈이야말로 생활의 안내자이며 꿈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고 말한 것은 흥미 있는 일입니다.
꿈은 무의식의 세계를 말합니다. 선입관이 없는 세계가 암시하는 바를 순순히 배우면 우리의 미래도 열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마음속으로 미워하는 사람을 꿈속에서 죽였다고 합시다. 꿈속에서는 현실과의 경계선이 없으므로 땀을 흠뻑 흘릴 정도로 흥분하고 있을 것입니다.
죽이고 낫 '큰 일을 하고 말았다'고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잠이 깨어서는 '꿈이어서 다행'이라며 안심할 것입니다.
꿈은 현실세계의 계시입니다. 꿈의 교훈을 잊지 않으면 범죄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꿈은 장래로부터의 메시지이며, 현실생활의 예습이고 복습인 것입니다.
잠자는 시간마저도 유익하게 쓸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역경은 삶에 강력한 활력을 제공합니다.
빚을 진 덕분에 일이 잘 되어
사회에 유익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빚도 일종의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패배에서 얻은 교훈을 새겨 대책을 생각하고 노력한다.

의욕을 불러일으키며 정열이 불타오르는 도전.
인간행동의 기폭제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에서 시작하면 무순 일이든 적극적으로 합니다.
싸움닭을 훈련시킬 때 조련사는 자기 닭에게 본시합에 나갈 때까지 약한 상대하고만 연습시합을 시켜 승리만을 가르칩니다.
패배를 모르는 닭은 자신만만해지고 더욱 강해져 어떤 강적을 만나도 기가 꺾이지 않지만,한 번 진 닭은 두 번 다시 못 쓰게 됩니다. 힘의 근원인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한 번 지면 자신감을 잃게 되지만 패배에서 얻은 교훈을 새겨 대책을 생각하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자신감을 회복해 재도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제 자신감의 반대편에 있는 열등감(콤플렉스)이 원동력이요, 활력이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랐으므로 '부자가 되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을 가지고 있거나,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 엄청난 일을 하는 등 역경이 큰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은 다른 세상이 아닙니다.
이승과 저승은 그림자처럼 함께 붙어 있는 동반자입니다.
死後 세계를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면
현세는 보다 더 풍요롭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과 영혼은 또 하나의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한다.

'영혼 따위를 생각하는 것은 무익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영혼을 믿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인도 사람들은 사후 세계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來世에 왕족으로 환생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후 세계를 염두에 두는 일은 전혀 무익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유익한 가치관을 제공합니다.
만일 사후 세계에 극락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인간은 보다 더 이 세상을 풍요롭게 살게 될 것이며,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악덕이 횡행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죽음은 육체가 사라지는 것일 뿐, 영혼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육체는 이승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3차원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즉 상하, 전후, 좌우의 구별이 있는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삶은 초, 분, 시, 일, 주, 월, 년이라는 단위로 이루어지고 행동은 모두 시간과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일정 기간 살다가 죽습니다.
前生, 現世, 來世로 이어지는 輪廻는 저승에서도 거듭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나 영혼은 또 하나의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고 나서 저승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저승에 있는 것입니다.
육체를 벗을 때 본래의 마음, 기억, 인격, 영혼이 나타납니다.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기 전의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랍니다.
저승은 본적지이고 이승은 현주소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인생이나, 일이나, 가정에서나 방침이 필요합니다.
방침은 배의 나침반과 같은 것,
'동생을 구박해서는 안 된다'
'밥을 더 달래고 남겨서는 안 된다'등
어린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쉽고 단순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삶의 차원이 달라지면 삶의 목적도 바뀐다.

인생에 명확한 목적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어떻게 다를까요.
목적 있는 인생은 현실이 아무리 목적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서히 그 목적 실현을 향해 나아가지만, 목적 없는 인생은 그렇지 못합니다.
목적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나침반도 없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배와 같아, 거친 세파 속에서 헛되이 방황만 할 뿐이고 자신이 지금 어디로 향하는지는 물론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인생의 나침반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한상 궤도수정을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차원이 달라지면 삶의 목적도 바뀌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돈을 벌 생각이었는데 어느 틈에 사회활동이나 영적수행에 눈뜰지 모릅니다.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간단한 방침을 세워서 실천해 나가는 것이 결국 결실을 얻게 됩니다.
이런 방침은 인생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을 할 때나 가정생활에서도 중요합니다.
교육방침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야단맞겠는데', '그러면 안 되지' 하고 어린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해야 합니다.
원칙 없이 어떤 때는 야단치고 어떤 때는 아무 말도 안 한다면 어린이는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모두 불행해질 것입니다.

투입과 산출,
이 세상에서 투입과 산출이 똑 같은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항상 어느 한쪽이 많게 마련입니다.
언제나 양자는 불균형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회는 평등해야 하지만 성과는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현대에 이르러 세상에 여러 가지 차별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나 오히려 지나친 평등주의가 널리 퍼진 것 같습니다.
선진국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면서 특히 못 가진 자가 가진 자보다 힘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평등의 의미를 확대하여 능력의 차이를 무시하고 평등하게 분배하는 制度를 수립한 나라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국민이 이런 制度에 만족하고 있는 한 그 나라는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회는 평등해야 하지만 성과는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정당한 代價를 부여하는 制度가 없어진다면 사람들이 활력을 잃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따름입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투임과 산출이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쪽이 다른 쪽보다 크거나 작은 것이 보통입니다.
1루피를 넣으면 반드시 커피 한 잔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은 매우 불평등한 것입니다.
투입과 산출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작은 투자로 큰 이익을 얻는 사람도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행운이 따르면 큰 성공을 얻을 수 있기에 인생은 자극적인 것입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업으므로 더욱 흥미진진한 것입니다.



3장


가능성의 문
* '못해요.' '불가능한 일이에요.'
* 이 같은 말로
* 간단히 당신의 잠재능력을
* 부정하지 마십시오.
* 인간은
* 한 사람 한 사람이
*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능성을
* 지니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수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에는 항상 위험이 따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만이
성공을 향한 도전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위기와 기회는 세상 도처에 널려 있다.

'기회가 많지 않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기회를 기회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회는 이 세상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기회는 보통 위험을 수반합니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앞 뒷면과 같아서 기회가 많으면 그만큼 위험도 많습니다.
기회는 위기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므로 위험을 무릅쓰고 까지 그 위기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별고 없으며 도전하려는 경쟁자 또한 적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때야말로 찬스입니다.
중요한 것은 위기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기회를 얻으면 대부분 비슷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인간성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위기시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다른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됩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위기에 빠져도 금새 의욕을 잃는 사람도 많습니다.
역경에 약할지 어떨지, 자포자기에 쉽게 빠질지 어떨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못해요.' '불가능한 일이에요.'
이 같은 말로 간단히 당신의 잠재능력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 순수하게 마음을 여는 생활,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인간은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로 보입니다.
옛날부터 달을 쳐다보고 '달에 가고 싶다'고 원했던 사람은 많이 있었겠지요. 그리고 언젠가 꼭 달에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으므로 그 꿈이 실현된 것입니다.
달 착륙에 성공한 요인은 '못해요', '불가능해요'라는 다수의 견해 중에서도 '이론상 가능하다',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해보자'라는 긍정적 의견을 믿어 왔다는 것입니다.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달에 가까워진 것이지요. 멀지않아 하루 안에 달 여행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작은 가능성도 부정하지 않고 노력할 때 어려운 과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다.'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가능할지 모르겠다.'
'가능할 것 같다.'
'분명히 할 수 있다.'
'이제 다 했다.'
이 여섯 단계의 사고방식은 잠재능력과 가능성을 개발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 순수하게 마음을 여는 생활, 사고방식이 귀중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천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재'도 제 때와 장소, 그리고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천재성을 꽃피울 수 없습니다.
물을 주고 버팀목을 대주고 길러 주는 사람이 있어야
'천재'도 활짝 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개성이 있다.

보통 천재로 불리는 사람의 이면에는 그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기회'와 '장소' 그리고 그런 '인연'을 만들어 준 사람이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누구나 천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천재가 실질적으로 천재가 되지 못하는, 즉 재능이 꽃피우지 못하는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
둘째, 본인에게 각성이 없었다는 점.
셋째, 천재성을 개화시켜 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모두 개성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만의 특성, 나는 나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능 혹은 개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특성은 좋은 환경 하에서 최고로 발휘됩니다.
적성은 자신의 개성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것이므로 자기에게 알맞은 일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재미있습니다. 시간이 가도 모를 뿐만 아니라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창의적인 연구도 저절로 나오게 되며 하루하루 발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일이 자기한테 맞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빨리 찾는 사람이 자기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은 기회를 도약대로 발전하는 존재입니다.

세상은 한 가지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1+1=2'가 되는 것만이 아니고
'1+1=3'또는 '1+1=1' 그리고 '1+1=0'도 옳은 대답입니다.
획일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이론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위와 같습니다.
'1+1=2'는 보통 사람들이 대답하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1+1=3'이라는 해답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서 만일 쌍둥이를 낳는다면 '4'라는 답도 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산소와 수소가 만나 화학변화를 일으켜 물이 되면 '1+1=1'이라는 답도 될 수 잇겠지요.
'1+1=0'은 어떤 경우일까요. 두 사람이 함께 회사를 창업했다가 도산하면 이렇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의 산수에서는 '1+1'이라는 단순한 질문에도 해답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는 것이죠.
세상은 이론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만사를 무턱대고 이론만으로 따지려드는 것은 무리입니다.
우리 선배들은 문제를 이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법률이나 규칙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법이나 규칙의 해석은 천차만별합니다. 사람 수만큼 법이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여러분이 인생 길에서 만나는 문제는 예외 투성이인 응용문제들입니다. 답하기 어려운 문제뿐이고 그 중에는 해답이 없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해답을 찾는 일,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세상을 획일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최고를 지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최고만 고집하다가는
뒤쳐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등이 언제까지나 일등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백화점 입구에서 나란히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별 세일이 있다면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제일 유리하고 가장 좋은 물건을 얻게 되겠지요.
그런데 백화점 옆 가게에서 더 좋은 제품을 할인 판매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그 가게로 제일 먼저 뛰어간 사람은 백화점에서 맨 뒤에 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일등이 언제까지나 일등은 아닙니다.
상황이 바뀌면 일등은 꼴찌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세상사에는 이런 일이 적지 않습니다.
대기업도 제품에 하자가 생겼을 때는 그 존립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안정을 바란다면 몇 가지 제품에 부담을 분산시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톱을 지향하다가 좁은 시야만을 지니게 된다면 어느새 시대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톱이 되었다'고 생각될 때 사실은 주위보다 뒤쳐지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최고를 지향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위 상황이 바뀌어 버리는 경우 최고가 항상 최고일 수는 없습니다. 마차를 모두 구입했더니 철도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기 산업에 취직했다 했더니 10년이 지난 뒤 그 직장은 구조적으로 불황산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같이 웃지 못할 일들이 들리곤 합니다.

무엇이든지 착수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
본인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망설이기보다는 시도해 봐야 합니다.

인생은 용기와 계산을 요구하므로 철저히 준비해서 시작한다.

'실수하고 싶지 않다.'
'창피당하고 싶지 않다.'
이런 식으로 말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철저히 준비해서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준비에만 시간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같은 태도는 어느 쪽이나 도전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큰 가능성이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따라서 일단 한 번 해 봐야 합니다.
복권을 사지 않고도 당첨될 리는 없습니다.
경쟁에 응모하지 않고 당선할 리도 없습니다.
자기 인생의 극본가, 연출가는 자신뿐인 셈이지요. 남이 나의 인생 각본을 써주지는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좋은 소질, 기회, 장소, 그리고 도와주는 사람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은 '내가 하겠습니다'라고 손을 올린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겁이 많고 대책이 없으면 말할 필요도 없고 우유부단하면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승부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용기와 계산을 요구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큰 승부에서 한 번은 모험을 걸어야 합니다.

히말라야를 사진으로 본 사람,
비행기에서 본 사람,
실제 올라가 본 사람,
저마다 본 풍경은 다를 것입니다.

진선미의 세계는 머리로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물론 산을 오르는 사람은 산의 전경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으로 가 아니라 몸 전체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세포 하나 하나가 히말라야를 기억하고 있는 셈이지요. 즉 산과 일체가 돼 있다고 해도 좋겠지요.
히말라야까지 가지 않고 작은 산에 올라도 풍경은 다르게 보입니다.
그것은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비행기에서나 사진으로 산을 보면 몸이 피곤하지 않기 때문에 무심히 볼 수 없습니다.
육체의 힘이 완전히 빠지고 모든 잡념이 머리에서 사라진 후에야 피사체의 참된 모습이 자연히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진선미의 세계는 머리로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나, 어둠 속에서 방황할 때, 나는 마음속에 계시는 신에게 조용히 여쭤 봅니다.
그러면 아주 미약한 전파이긴 하지만 분명한 지시를 내려 줍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려 하지 말고 오로지 마음속에 있는 신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머리로 생각하려 해도 무리입니다.
육체의 힘이 다 빠져 무심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전개되듯이,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 해야 합니다.

직관력을 훈련시킨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이것은
본질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직관력이 작용한다.

직관력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좋고 싫음의 감정입니다.
어떤 사람은 첫인상부터 아무래도 좋아하게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느낌을 갖게 되면 좀처럼 생각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직관이 정답일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자면 파장이 맞지 않는 것이지요.
당신도 살아 오면서 많은 이들을 만나셨지요.
직관은 자체 자료에 의거해 컴퓨터보다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나름대로의 해석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싫어하는 사람과도 함께 일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좋고 싫음의 감정을 감추고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직관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현재까지 축적해 온 단순한 자료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수 만년 전 전생으로부터 상속 받은 재산입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처음 만난 사람의 인상을 갖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직관력은 계속 잘못된 답을 주겠지요.
사기꾼은 신사보다 더 훌륭한 모습과 말씨로 접근합니다. 그러나 직관력을 옳게 사용한다면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겉 모습에 눈이 멀지 마십시오. 눈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직관력이 작용합니다.

알게 되는 것은 작은 깨달음.
눈앞에 있어도 몰랐던 것을
어느 순간에 깨닫게 됩니다.
모든 존재는 아름답고
모든 사건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청년은 육체로 세상을 배우고 장년은 마음과 지성으로 세상을 대하며 노년은 영혼으로 세상을 느낀다.'
이것은 신비교육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말입니다.
의식이 우주와 연결돼 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여러 번 윤회를 거듭해야 알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의식과 우주가 관계가 있음을 어렴풋이 아는 것만도 드문 일입니다.
알게 됐다는 것은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퍼뜩 생각이 들었을 때 우리는 순간적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눈앞에 있어도 몰랐던 세계가 벽을 넘자마자 똑똑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들어가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병은 건강의 귀중함을 알리기 위하여 신이 우리의 의식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고난은 영혼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우리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선물입니다.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삶'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일들은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깨달음은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후 찾아오는 것이지요.

돈도 사람도 정보도 진심으로
그것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모입니다.
돈이나 사람이나 정보는
모두 스스로의 가치가 올바르게
평가되면 아주 좋아합니다.

실제보다 과대 평가하면 업신여기는 것과 같다.

돈은 그것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모입니다.
인재는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모입니다.
정보를 귀중하게 생각해야 그것을 수집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한 번 쓰고 버릴 듯이 다루는 사람에게는 돈이나 사람, 정보가 모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사람, 자기를 제대로 평가해 주는 사람에게 호의를 가지게 마련이며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면 사람들은 의외의 정보를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정보를 확대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인터넷을 이용해서 열심히 정보수집을 할 수도 있으나 별반 효과를 얻지 못하며 그것보다는 자신이 가진 정보를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정보가 틀렸을 수도 있고 상대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간단한 정보로 놀라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도 있겠지요.
정보는 독점하지 말고 나누어야 합니다. 다른 곳으로 보내면 친구를 데려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점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약점을 보완해 주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언제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르게 평가해 주어야 합니다. 실제보다 과대 평가하면 업신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4장


성공의 문

* 실패에서
*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 시원치 않게 성공한 사람보다
* 큰 성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자기보다 능력이 훨씬 크면
상대의 태도를 잘 지켜 봐야 한다.
실력이 비슷하면 먼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이긴다.
자기보다 훨씬 못한 상대와 쓸데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챔피언에게는 챔피언에게 어울리는 전법이 있다.

인간에게나 기업에게나 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의 집합체인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소국은 강대국과 상대해 싸울 경우 핵무기 등 강력한 무기가 없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현명한 지도자는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서 국민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든 기업이든 능력이 훨씬 뛰어난 상대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순간적인 기습은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점이 드러납니다.
장기간의 지구전으로는 약한 자가 강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헛된 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다툼으로 번지지 않도록 항상 주도권을 지켜야 합니다. 상대를 결코 화나게 만들면 안 됩니다.
만약 규모나 힘에서 비슷하면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행동에 옮기는 쪽이 이깁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를 볼 틈은 없습니다.
먼저 행동하는 쪽이 이깁니다.
그러면 한쪽이 강대국이나 대기업인 경우는 어떨까요?
상대가 하는 대로 놓아두었다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해서 대처하면 됩니다.
챔피언에게는 챔피언에게 어울리는 전법이 있습니다.

빨리 성공하고 싶으면 스승이 많아야 합니다.
스승이란 나이, 성별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어린아이에게도 배우는 자세를 가지면
성공은 보장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에게도 배운다.

사람의 인생은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성공도, 실패도, 행복도, 불행도 모두 이것에 달려 있습니다.
'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그러므로 일뿐만 아니라 삶의 원리원칙을 지도해 주는 스승을 모시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이 차이가 있는 친구와 스승을 가질 것을 충고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당신에게 없는 지혜, 정보, 인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문제 발생시 사태를 다각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당신에게 절실한 충고를 해줄 것입니다.
나이 차가 있는 친구나 스승은 물론, 상사와 선배, 동료와 후배 등 우리에게 스승이 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수많은 스승이 있으며, 성공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에게도 배웁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바로 이 점에서 실패하는 사람과 다릅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타인의 지혜를 이끌어 내지 못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지혜를 살릴 수 없는 것이지요.
성공을 위한 원리와 원칙은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주변 사람이 깨닫게 해주는 것뿐입니다.
한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자신을 위해 그것을 살리는 데에 있습니다.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하는 일,
모순되는 것을 양립시키는 일,
복잡한 것을 단순히 생각하는 일,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성공의 요소는 단순하며 유능한 사람은 하나를 듣고 열을 안다.

유능한 사람은 하나를 듣고 열을 압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무에서 유를 생각해 내는 능력보다 하나를 듣고 여러 가지를 유추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중요한 것은 발상력보다 연상력입니다. 차례로 유추해 내는 연상 중에 한두 가지 반짝거리는 아이디어가 있는 것처럼 사물이나 사고에 대하여 인지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에 따라, 세상에서의 성공은 당사자 이외에는 전부 추상적인 일입니다.
성공을 위한 법칙을 들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타이밍이 맞았고, 그 장소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소화불량만을 일으키게 됩니다.
자신에게는 무엇이 유용한지 깊이 생각하고 자기의 말로 소화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추상적이어서 이제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 구체적인 의미를 띠고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모순되는 일들을 양립 시키는 것이 성공의 길입니다.
좋은 제품을 싸게 판다는 것은 원래 모순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양립 시키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뛰어난 아이디어는 반드시 상식을 벗어난 것입니다.
상식적인 사람은 상식을 벗어난 아이디어를 가질 수 없습니다.
보통사람은 상식에서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공의 요소는 단순한 것입니다. 단순하지 않은 것은 실용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수도 없습니다.

간단한 일은
손을 놓지 말고 주의 깊게 하십시오.
어려운 일은
대담하게 진전시키십시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인생이나 일에 있어서 실패하는 것은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적당히 생각해서 손을 뺍니다.
그리고 실패합니다.
반대로 어려운 일은 좀처럼 착수하려 하지 않습니다. 쓸데없이 시간을 흘려 보내고 제한 시간이 가까워지면 급하게 서두릅니다.
그리고 실패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하는 사람이 하는 방식의 반대로 하면 됩니다.
간단한 일은 오히려 손을 놓지 않고 조심스럽게 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이 일하는 태도를 보고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손을 뺀 간단한 일도 창의롭게 연구해서 열심히 한다면 '이 사람은 작은 일도 이렇게 정성 들여 하니 큰 일도 매우 정확히 할 거야. 한 번 시켜 보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조도 그런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싶습니다.
'더 큰 일을 주세요. 작은 일은 진지하게 할 수 없어요'라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일을 맡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래 금액이 큰 일만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대담한 발상으로 세심한 주의를 들여 진전시키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큰 일이라 해도 결국 작은 일들이 모인 것이므로 매우 조심스럽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이 크면 클수록 발상은 대담해야 합니다. 발상도 작은 일과 같으면 안 됩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진보를 뜻합니다.
변화를 부정하거나 무시하거나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변화에는 활력의 기세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타는 것입니다.

휴식도 運을 놓치지않는 비결 중의 하나이다.

인생에는 機運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인생에는 파도와 바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파도에는 높은 파도와 낮은 파도, 바람에는 순풍과 역풍, 각각 두 종류가 존재합니다.
파도가 낮고 순풍을 받으면 돛을 활짝 펴고 나아갈 수 있지만 반대로 파도가 높고 역풍이 불면 점점 목적지로부터 멀어지고 배가 난파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슬럼프이므로' 자신의 불운을 불평하는 사람은 확실히 바람과 파도의 상태를 알고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한탄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을 보다 나은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 파도 높이에 변화가 없는지 등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운이 나쁘더라도 사람들의 평가는 올랐다 내렸다 합니다. 역풍은 길어야 3년, 그것을 맞받아 나가려 한다면 힘을 소진할 뿐입니다.
그때는 힘을 보존하고 충전해야 합니다.
휴식도 운을 놓치지 않는 비결 중의 하나입니다. 실 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따라 기회가 돌아올 때 유익하게 작용합니다.
흐름에는 기세가 있습니다. 역풍의 기세가 꺾이고 풍향이 바뀔 때 바로 엄청난 힘을 등에 받고 전진해야 할 때입니다.

새것은 언제나 낡은 것보다 강합니다.
좋다, 나쁘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새것은 항상 낡은 것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도 귀중하지만 개혁은 더 중요하다.

新參은 반드시 古參보다 강합니다.
시대든, 나라든, 기어이든, 개인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세상사의 이치입니다.
아무리 큰 유행이었더라도 낡은 유행은 새 유행에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새것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큰 힘을 가집니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관계가 없습니다.
나라의 制度가 낡으면 새로운 制度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바람이 붑니다.
챔피언 자리를 지키기는 대단히 어렵고 도전자는 언제나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항상 새것은 젊은 활력을 지녀 다른 것을 능가합니다.
시대가 성숙해서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새 바람이 낡은 바람을 몰아냅니다.
새 바람이 불어오면 그 힘을 막기보다는 그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성공은 시대의 바람이 어느 쪽을 향해 불고 있는가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전통도 귀중하지만 개혁은 더 중요합니다.
불변하는 것, 변하는 것, 변해야 할 것, 이것들의 내용을 확실히 파악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활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시원치 않게 성공한 사람보다
큰 성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체험을 통해서 어떻게 배우느냐가 중요하다.

성공이든 실패든 우리의 체험을 분류하면 다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도움이 되는 경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험, 유해한 경험입니다.
경험 중에는 여러분이 장래에 큰 일을 하기 위해 면역을 길러 주는 것도 있고 지나친 출혈로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것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피와 살이 되는 것은 바로 도움이 되는 체험입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체험 그 자체가 도움이 되거나 도움이 되지 않거나 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체험을 통해 어떻게 배우느냐가 중요하고 그 결과에 따라 위의 세 부류로 나뉩니다.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십시오.
사람들은 평범한 인생 속에서는 배울 기회를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패하면 자신의 부족한 점, 약점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에 싫더라도 이를 극복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같은 심한 체험을 통해서 '이런 식으로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법칙이나 반대로 '저런 식으로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직관을 익히게 됩니다.
인생에서는 우리가 단념할 때까지 패자부활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 번 실패한 체험을 통해약점을 극복하고 경영방식을 바꾸었으므로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기업을 이룩한 사람도 있습니다.
실패를 깨달음에 이르는 跳躍臺로 잘 활용한 결과입니다.
실패를 잘 살리면 어설픈 성공보다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요인이 됩니다.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압니다.
그 일은 남에게 맡기면 됩니다.
그것이 성공에의 길입니다.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므로 자신을 신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은 신이 아니므로 전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노력하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노력에 따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한두 가지의 일이라도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하물며 무엇이든지 다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은 이 점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사람입니다.
우선 자기가 못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경영은 할 수 있지만 기술개발은 못한다면 기술자를 고용하면 됩니다.
교육은 할 수 있지만 판매확대는 할 수 없다면 자신은 인재 육성을 담당하고 다른 분야는 전무가를 쓰든지 하면 됩니다.
기술은 있지만 자금이 없으면 은행에서 빌리면 됩니다.
한마디로 '떡은 떡집', 못할 일은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에의 지름길이요, 왕도입니다.
이런 단순한 일을 깨닫지 못하고 모두 혼자서 떠맡아 하려다 고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그런 식으로 산다면 아무리 시간이 있어도 부족하겠죠.
자신을 신처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운세가 있는 사람은
강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에너지가
더 큰 운세를 불러옵니다.

운세는 에너지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자문자답하면서 열심히 인생을 설계합니다.
마음가짐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진리가 존재한다면 이 말이야말로 진리입니다.
'나는 운이 없다', '너는 운이 있다' 이런 식으로 말들 하지만 운을 보는 방식은 다음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의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운이 있다'거나 '운이 없다'라고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운이 없을 때도 '운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실제로 행운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운세는 에너지입니다.
행운의 여신은 引力처럼 그 에너지에 끌려 문을 엽니다.
성공하면 운이 좋았다. 실패하면 스스로 부족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공을 자기 실력 때문이라고 자만하면 안 됩니다. 실패를 운이나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아야 합니다. 평소 이런 마음의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운이 찾아옵니다.
운세는 에너지입니다.
강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모입니다.
'類類相從'이라고 하듯이 끼리끼리 모입니다.
친구들 중에 성공한 사람, 운이 좋은 사람을 보십시오.
그의 주변 사람들도 모두 운이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
질병과 건강,
모두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한
신의 선물입니다.

여유만큼 사람을 느긋하고 온화하며 상냥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삶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변화는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순풍을 타고 순조롭게 출항을 한 사람에게 변화는 실패나 질병 등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합니다.
좋지 않은 변화는 겉으로는 매우 곤란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모두 마음과 영혼을 훈련시키기 위해 계획된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깨닫게 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지요.
평온할 때는 누구나 훌륭하고 환해 보입니다.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유만큼 사람을 느긋하고 온화하며 상냥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유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 뿐, 영혼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10루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지에게 1루피를 나눠 주는 것은 쉽겠지요. 그것은 영혼이 주는 것이 아니라 여유가 주는 겁니다.
그러나 당신이 온 재산을 기부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인간성 전체가 하는 행위입니다.
어려운 일, 실패나 질병 등은 모두 마음과 갚은 관계가 있습니다.
곤란이 닥쳤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가, 여기에 그 사람의 인간성 전체가 달려 있습니다.
실패, 질병 등 역경은 그 어려움을 넘어서 사람의 본질을 성장시킬 수 있을 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시금석입니다.



5장


미래의 문

* 인생에는
*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 양자택일은 없습니다.
* 늘 도 하나의
* 선택 시기가 있습니다.
* 그런데
* 제3의 선택 시기를 알 수 있는
*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 그러므로 자신이
*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맙니다.

미래를 알고 싶으면
먼저 과거를 알아야 합니다.
과거 속에 현재의 원인이 있고
현재 속에 미래의
현상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고 지혜로운 사람은 歷史에서 배운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선인들의 지식이나 지혜를 참고해 인생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 성공이나 실패를 통하여 인생의 眞髓를 배워 옳고 효과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선인의 지혜를 하나의 가치로 생활 속에서 具現化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고 지혜로운 사람은 力士에서 배운다'고 합니다.
하나의 끝은 하나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과거의 결과는 현재 발생하는 일의 원인이고 현재의 결과가 미래에서 발생할 일의 원인이 되는 것이죠.
미래를 알려면 우선 과거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과거 속에 현재의 원점이 있고 현재 속에 미래의 현상이 응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리를 모르는 사람만이 '무관'하다는 말을 쓰는 것이지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인연으로 뿌리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현재는 지난날의 행동의 代價입니다.
현재 처한 상황이 불만스럽다면 과거를 후회하기보다 현재의 궤도를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 것인가 고민하십시오.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불행, 불운, 빈곤은 하나의 전염병입니다.
예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철저하게 피하는 것,
또 하나는 면역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운세는 에너지이므로 전파의 성질을 띤다.

운은 에너지입니다.
운이 좋은 사람에게는 에너지가 작용해 운이 좋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반대로 에너지가 약해서 실패만 반복하는 사람, 불행, 불운, 빈곤이 겹쳐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도 같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므로 이는 지옥과 같은 양상을 띠게 됩니다.
운세는 에너지이므로 전파의 성질을 띱니다.
한마디로 불행, 불운, 빈곤은 전염병과 같아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갑니다.
에너지가 강한 사람은 면역성이 강하므로 발병하지 않지만 에너지가 약해진 사람은 쉽게 감염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최근 불운과 불행이 계속된다거나 가난해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여러분 자신의 에너지가 떨어진 점에 더해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의 영향도 받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그 사람의 탓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도 그 영향을 받아들이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방법, 치료 방법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높이는 일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조언한다면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을 것, 철저하게 피할 것, 불운, 불행, 빈곤을 경험해서 면역성을 가질 것 등입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미리 생각해서 고민하지 맙시다.
움직여야 할 때가 되면 그때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망설일 때
神의 힘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망상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신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흐름을 기다려야 합니다. 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것은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왜 결정짓지 못합니까?
어느 쪽이라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라도 좋기 때문에 결정을 못하고 갈피를 못 잡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류 학교와 삼류 학교, 양쪽 다 합격했다면 어느 쪽에 진학할지 아무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차이가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결정 못할 때는 일류 대학을 여러 군데 합격했을 경우입니다.
이때는 차이가 없으므로 어느 쪽이 좋을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장래를 위해 어느 쪽이 유익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망설이는 것입니다.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해 보려고 고민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 바꿀 수 없는 과거, 알 수 없는 미래를 밝히려고 하는 것은 번뇌일 뿐입니다. 그것은 妄想입니다.
망상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앞으로의 일에 관해 지나치게 생각해서 고민하지 맙시다.
망설일 때는 신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산다는 것은
신이 벌려 주시는 시간을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빛나게 만들 수 있는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미래는 언제나 신비한 것이다.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 자신도 옛날에는 사람들의 미래를 예견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이 예언 덕분에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을까요?
바뀌지 않습니다.
내일 길을 잃어서 헤맬 것이라고 알려 주면 지도를 들고 길을 가지만 어느 사이에 역시 길을 잃고 헤매게 됩니다.
장래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미리 아는 것과 앞날이 즐겁고 빛나리라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만이 우리에게 허락된 일입니다.
인간에게 미래는 언제나 신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는 더욱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앞날을 안다면 누구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빈 몸으로 이 세상에 와서 빈 몸으로 갑니다.
그 동안을 인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신으로부터 빌린 시간입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결국에는 신 앞에 돌려 주어야 할 운명입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다 빛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합시다.
이것이 신에게서 빌린 시간에 대한 이자입니다.

불행은 해일처럼 연이어 밀려옵니다.
처음이 중요합니다.
치명상을 피하고 싶으면
두 번째의 재해를 막아야 합니다.

불행이나 재난을 만나 슬퍼하기만 한다면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인간 만사 塞翁之馬'라고 하지만 불행은 한 번뿐이 아니라 연이어 발생합니다.
불행으로 마음이 아픈데다가 또 다른 불행이 발생하면 견디기 어려워 자포자기할 수 있고 또한 그 불행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만의 불행이 한 번 더 겹치는 것이지만 '내 인생은 불행한 일만 계속된다'고 확신하면 결과는 그대로가 되고 맙니다.
누구도 불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사람은 실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재의식 속에서 세 번째 불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외곬수로 생각하며 불행이나 재난을 만나 슬퍼하기만 한다면 상황은 바꾸지 않습니다. 원래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지도 않습니다.
슬퍼하기만 해서 두 번째 재해를 일으키는 것보다 '엎지른 물'이라고 인정함으로써 괴로운 마음을 뿌리치고 전진적으로 상황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현상을 바꾸는 일이 됩니다.
누구나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 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할 수 있다면 불행은 사라지고 개운해집니다.
하지 못한다면 일생 동안 과거에 질질 끌려 다녀야 합니다.
사람은 일단 충격을 받으면 좀처럼 재기하지 못합니다. 계속 그대로 눕고 싶겠지요.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지 않으면 두 번째 재해가 닥치고 그때에는 완전히 잠기고 맙니다.
딱 한 번만의 인생이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인생에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양자택일은 없습니다.
늘 또 하나의 선택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3의 선택 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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