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될 때, 대개 ‘무시당하는 것 같고, 부당한 일이기 때문에’ 분노의 감정반응이 나타나게 된다.
언성을 높이는 등의 행동적 반응과, 온몸이 경직되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신체 반응이 이어 따라온다.
이런 과정은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그 순간에 떠오른 자동적 사고는 상황을 마주하는 개인마다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그 순간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나와,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 인지치료의 창시자 A.T. Beck 은 그것을 스키마(schema, 혹은 심리도식)라고 지칭했다.
이 순간의 반응은 마치 화학 작용이 일어나듯이 순식간에 일어난다.
순차적으로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마주한 상황이 스키마로부터 의식으로 올라온 생각과 연결되어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분노의 감정 반응으로 내달리게 된다.
이러한 반응을, 스키마 치료 이론에서는 스키마 화학 작용(schema chemistry)이라고 부른다.
분노의 게이지가 한 칸씩, 한 칸씩 서서히 올라가기보다는, 0퍼센트에서 100퍼센트로 갑자기 수직상승하는 경험은, 유쾌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겪어 보았을 것이다.
낡은 분노를 설명하는 열쇠는 스키마에 있다.
누구나 타고난 유전적 기질과 성장 과정의 경험을 통해 고유의 독특한 관점, 즉 스키마를 지니게 된다.
다른 관점을 지닌 이들은, 즐거운 일과 슬픈 일, 그리고 화가 나는 일에 대한 관점도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상처를 쉽게 받는 취약한 부분도 달라진다.
유독 상대방이 멀어지는 느낌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
조금만 연락이 되지 않아도 불안해 하고, 전화를 연거푸 걸어 보고, ‘나를 떠나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연결이 되면, 상대방에게 분노를 퍼붓곤 한다.
‘버림받음’의 스키마를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또는 상대방의 언행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도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악하고, 자신을 착취하려 한다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상대방의 말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고 경계하게 된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처럼 폭발적인 분노가 나타난다.
이런 사람들은 ‘불신/학대’의 스키마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
‘결함’의 스키마를 가지고 있다면, 언제나 낮은 자존감에 시달린다.
자신에게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무의식중에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 말이 왠지 기분 나쁘게 느껴지고,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을 쉽게 받는다.
늘 예민한 상태에서 상대방의 사소한 말에 ‘울고 싶은데 뺨을 맞은 느낌’이 들고, 이런 분노의 감정을 상대방 탓(투사: projection)으로 돌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스키마 치료 이론(schema therapy theory)에서 이야기 하는 여러가지 스키마가 존재하지만, 나중에 다른 글로 다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다.
스키마는 타고난 기질(temperament)과 성장 과정에서의 경험들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생겨난다.
그러므로, ‘낡은 분노’는 과거에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현재의 작은 불씨를 만나는 순간 예전의 고통스러웠던 경험과 결합하여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격렬한 분노가 나타나게 된다.